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셀레우코스 제국 (문단 편집) == 사회/문화 == 초창기 셀레우코스 왕조는 특히 헬레니즘 문화의 전파에 정력을 쏟았는데, 이는 특히 도시 건설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신도시를 건설한 경우도 있었고, 원래 있던 마을을 크게 확장하여 도시를 조성하기도 했으며 원래 있던 도시를 이름만 그리스 식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마케도니아나 북부 그리스 지명 (가령:[[에데사]]), 또는 왕가의 이름을 딴 지명이 많은데... 밑을 봐서 알다시피 왕의 이름이 태반이 셀레우코스 아니면 안티오코스다. 그래서 결과는? 안티오키아, 셀레우키아, 초대(?) 왕비인 아파마를 딴 아파메아 등 똑같은 이름의 다른 도시가 너무 많아 머리를 아프게 한다. 또한 그리스 지명을 딴 도시들 역시 상당히 헷갈리게 한다.] 이런 식으로 여러 곳에 거점 도시들을 만들고 그리스-마케도니아인들을 정착시켜 헬라스식 문화를 뿌리내리는 동시에 헬레니즘화된 토착민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또한 토착 엘리트들에게 헬레니즘 양식의 옷들을 하사하고 그리스식 이름을 주는 등 문화적인 혜택을 주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시도는 왕조 초창기에만 이루어졌다. 우선 [[디아도코이]] 전쟁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양강 체제가 이루어지면서 둘이 박터지게 싸우느라 왕들이 도시 건설을 할 상황이 못 되었다. 게다가 사방에서 적이 쳐들어와 영토가 시시각각 축소되고,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본토도 인구가 많이 유출되어 더이상 뽑아낼 인구가 없었기 때문에 신도시 건설은 급속도로 자취를 감췄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동방 영토 영유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화를 통한 헬레니즘 정책은 다른 곳에서는 점차 사라져 갔지만, 그 대신 [[박트리아]] 왕국이 바톤을 넘겨받아 헬레니즘 문화를 상당히 융성하게 했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사회]]나 [[세계사]] [[교과서]]를 보면 [[신라]] 시대 불상과 인도의 간다라 불상을 비교하며 헬레니즘 문화에 대해 서술한 내용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박트리아 왕국의 영향이다. 또한 왕조의 중심지였던 시리아와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는 헬레니즘이 확고한 대세로 자리 잡았으며, 이는 이후 [[고대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을 거쳐 [[이슬람]] 시대까지 시리아 및 지중해 연안 지대의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로마가 셀레우코스 왕조를 마그네시아에서 꺾을 때가 아이러니하게 셀레우코스 왕조의 절정기였고 그 중심에는 대왕이라 불리는 안티오코스 3세가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 중에 가장 국력도 강했던 나라였던지라 로마가 제정으로 변모한 뒤 셀레우코스 왕조의 의례를 많이 본받으려고 했다. 그래서 동로마 제국의 황제에게까지도 비슷한 의례가 전해졌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